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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소식

'닫히는 미국…흔들리는 다문화' 2018-01-11




 

 

 

 

 

 

#흔들리는 ‘American dream’

 

지난 9월 필자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교육청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우리 관내 학교들은 불법 또는 합법 거주 여부(immigration status)와 상관 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겠으며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메시지였다. 트럼프 정부가 불법체류 청년들의 추방을 유예해온 '다카(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프로그램을 내년 3월 전격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교육청 차원에서 급박한 대응 조치에 나선 것이다.


 


[사진1- DACA폐지 발표 이후 교육청으로부터 온 이메일]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발표는 지난 1월 공표된 ‘반 이민 행정명령(Trump’s utive orders on refugee & immigration)‘에 이어 또다시 미국 내 이민자들과 다문화 사회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다카(DACA)’프로그램은 지난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불법 체류 청년들로 하여금 불안에 떨지 않고 학교와 직장에 다닐 수 있도록 추방 조치를 유예해준 행정 명령이다. 16세 이전에 부모를 따라 미국에 불법 입국해 최소 5년 이상 거주하고 현재 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취업 활동 중인 31세 미만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 이 혜택을 받는 청년들은 이른바 ‘드리머(Dreamer)’로 불렸다. 다문화를 존중하고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를 계속 열어두겠다는 오바마 정부의 유연한 정책 노선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이 다카 프로그램의 폐지를 전격 발표하면서, 졸지에 추방 위기에 몰리게 된 다카 프로그램 해당자들이 무려 80만 명에 이른다. 미 행정부는 6개월의 유예 기간을 두고 그 기간 동안 의회가 피해자들을 구제할 법안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한 상태지만, 미 언론들은 올해 안에 관련 법안의 처리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 동안 미국은 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을 오는 아이들에게 비자 또는 시민권 등의 깐깐한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다. 미국 내에 거주지 주소만 있으면 모든 어린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미국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보호해온 것이다. 때문에 전국 대부분의 교육청은 학교가 아이들에게 immigration status를 묻는 것조차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불법 체류자 신분임에도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교육의 기회를 잃지 않고 학교에 정상적으로 다니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학들도 한 목소리를 내왔다. 필자가 연수를 수행 중인 듀크대학교의 Price 총장 또한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에 대해 별도의 성명을 발표하고 “우리 대학은 기존의 DACA 프로그램을 지지한다”고 공표했다. 또 듀크대학교 내 비자국에서는 이민전문 변호사를 초청해 대화의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고, 교내에서 이를 논의하기 위한 학술 세미나도 이어졌다.

 

 

 [사진2-Duke 대학 총장의 DACA프로그램 지지 성명]

 

 

그간 이와 같은 다문화 보호 정책이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불릴 수 있게 해줬고 실제로 수많은 성공한 어메리칸 드리머(American dreamer)들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며 조화롭게 사회를 유지시켜왔고 미국을 성공적인 ‘다문화 국가’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 ‘드리머’들은 이제 추방의 위기 앞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

 

필자와 학술 세미나를 같이 들었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한 학생은 자신도 매일 불안에 떨고 있다며 DACA프로그램에 등록한 것을 후회하게 됐다고 말한다. 오히려 다카에 정식 등록을 하지 않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불법체류 신분으로 남아있었으면 이제 와서 쫓겨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는 게 그의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이번 행정조치의 아이러니한 측면을 보여주는 단상이기도 하다.

 

 

 

#빗장을 걸어 잠그는 ‘이민자의 나라’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미국은 급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1세기 판 쇄국 정책’이라 불릴 정도로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정책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반이민행정명령과 DACA프로그램 폐지에 이어 이제는 비자 정책까지 손보겠다며 잰걸음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전문 기술을 보유한 외국인에게 발급해온 H-1B 비자와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한 J-1비자 등의 축소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학생들이 방학기간 주요 관광도시에 입국해 일하며 문화교류를 할 수 있도록 해온 일종의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과 미국 가정에 머물며 아이를 돌보면서 각종 수업과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오페어(au pair)’프로그램까지 대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경 검색과 입국 심사도 대폭 강화되고 있다. 최근 애틀랜타에 입국하려던 한국인 85명이 무더기로 입국 거부를 당하는가 하면, 한국발 미국행 여행기 탑승객에 대한 보안 질의 절차도 강화됐다. 이제는 공항 출입국 심사대 뿐만 아니라 각 항공사 카운터에서까지 까다로운 심사를 한 번 더 받게 된 것이다. 영주권 인터뷰도 강화돼 모든 신청자들이 인터뷰를 반드시 거치도록 의무화 됐다.

 

일부 미국 시민단체들은 국경지역의 검문검색이 과도하게 강화됐다며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과 비영리기구 전자프런티어재단(EEF)은 “범죄전력이 없는 미국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등 10여 명이 영장도 없이 수색 당했고 국경 경비요원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수면 위로 올라오는 ‘인종 차별’

 

정부가 빗장을 걸어 잠그는 사이 미국 내 인종차별은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뉴저지 주의 한 카운티에서는 교육위원 선거에 출마한 아시아계 후보를 비방하는 인종차별적인 선거 홍보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홍보물에는 중국계와 인도계 후보들 사진과 함께 “중국인과 인도인이 동네를 점령하고 있다”며 이들 후보가 교육위원으로 선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곳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 아시아인이며 45%가 해외에서 출생한 이민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홍보물에는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를 그대로 인용한 “Make Edison Great Again”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어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정부의 다문화 정책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새로운 쇄국 정책이 발현하는 사이 숨어있던 인종 차별까지 표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3-뉴저지 주에서 발견된 인종차별적인 홍보물]

 

 

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 학생들이 많이 재학 중인 동부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사가 수업 중 “I hate Korean”(한국인을 증오한다)라는 발언을 해 현지 한인 커뮤니티에서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 지난 9월 미시시피 주에서는 한 초등학교 교사가 흑인을 지칭하며 ‘아프리카로 돌아가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해고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주의 한 커피 매장에서는 백인 여성이 한국말로 대화하는 한국인들에게 “역겹다” “미국이니까 영어만 써라” 라고 말하며 매장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한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했다.

 

그런가 하면 수많은 대중들이 지켜보는 광고에서도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누회사인 ‘도브(DOVE)’는 자사 비누를 사용한 흑인 여성이 티셔츠를 벗자 백인으로 변하는 내용의 광고를 내보냈다가 인종차별 논란이 일자 결국 사과를 했다.

 

 

 [사진4-인종차별 논란을 불러 일으킨 도브(DOVE)비누의 광고]

 

 

미국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모든 초.중.고등학교에서도 가장 중점을 두고 이 부분을 교육시키고 있으며 어길 경우 가장 엄격한 처벌 조치를 가한다. 때문에 이 같은 차별 행동들은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속으로 생각할지언정 겉으로는 드러내지 못했던 일들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노골적인 인종차별 사건이 속출하고 있으며 이에 동조하는 국민들이 곳곳에서 이른바 ‘커밍아웃’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민자의 나라가 시민권자의 나라로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 건 (이민자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사실이다” (What makes America ‘America’ is that we offer that ‘chance’.) 2년 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메시지 중 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말은 이제 빛을 잃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가 아닌) 시민권자의 나라(nation of citizens)”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공표하고 있다. 지구촌의 가장 대표적 ‘이민자의 나라’가 이제는 ‘자국 시민권자의 나라’로 문을 걸어 닫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뉴욕 맨해튼에서 발생한 지하철 테러 시도는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비록 부상자는 많지 않았지만, 뉴욕 도심 한 복판에서 테러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테러범이 ‘이민자’라는 사실은 미국인들을 더 격앙된 감정 상태에 몰아넣고 있다. 이를 틈 타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법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나섰다.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다. 필자가 연수 주제를 ‘다문화’로 정하고 미국에 입국할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급박하게 돌아가며 숨 가쁜 변화 양상을 연출할 줄은 몰랐다.
연구 소재는 넘쳐나고 있지만 그만큼 미국 사회는 진통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교민들을 비롯한 이주민 사회가 불안에 떨고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던 사회에서 단일성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하면서 각자의 개성과 고유문화는 ‘내놓기 두려운’ 요소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다문화’를 이끌던 미국의 급격한 배신이랄까? 다문화주의는 그야말로 기로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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