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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소식

뉴욕에서 만난 트럼프와 배트맨 2018-01-11




 

 

 

 

 

#타임스퀘어의 배트맨

 

집 앞 타임스퀘어를 지나갈 때면 배트맨을 만난다. 거의 매일이다. 뉴욕에 도착한 첫날, 그는 나를 보더니 관광객인 줄 알고 슈퍼맨과 아이언맨 등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나를 둘러쌌다. 무서웠지만 난 물었다. “얼마야?” 배트맨이 말했다. “only 10 dollar”. 씩 웃는다. 발음은 히스패닉이었다. 관광객들이 한번은 꼭 들르는 뉴욕의 심장, 타임스퀘어. 배트맨 망토를 입고 가면을 쓴 이 히스패닉 남자는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10달러씩 받는다. 나는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지갑엔 10달러 지폐는 없었다. 50달러, 100달러짜리 지폐 뿐. 그 큰 액수의 지폐를 내면 배트맨이 거슬러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언맨과 슈퍼맨이랑 합세해서 내게 “가진 돈 다 내놔”할 것 같았다.

 

 

 

 [사진1 - 타임스스퀘어는 늘 배트맨과 헐크 등 각종 영웅으로 가득차있다.
그들은 관광객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돈을 받는다. 휴식시간에 가면을 벗고 돈을 세기도 하는데
그때 보면 대부분 히스패닉이다.]

 

  

 

아직 내지 않은 학비도 렌트비도 다 털릴 것 같았다. “Sorry, I am Newyorker” (난 뉴요커거든, 관광객 아니거든. 나 여기 살거든. 그래서 이런 관광객 같은 사진 안 찍을 테야. 사실 찍고는 싶지만...을 줄여서 이렇게 짧게 말했다.) 배트맨이 말했다. “네가 뉴요커라고? 내 눈은 못속여, 넌 관광객이야”. 다음날 학교 가는 길. 눈썰미도 좋지. 어제 그 배트맨이 또 나를 잡는다. “안녕, 오늘은 사진 찍자. 오늘은 9달러에 해줄게” 겨울이 지나갈 무렵이 되자 배트맨과 난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학교 가니?” “응, 오늘 많이 벌었어?” 이 정도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기자라는 직업의 호기심 때문에 하루는 배트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대뜸 얼마 줄 거냐고 내게 묻는다. “커피랑 저녁을 살게” 내 제안을 그는 단번에 거절했다, 그 시간에 차라리 타임스퀘어에서 관광객들과 사진 찍는 게 더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 나왔을까. 이름을 물어보는 내게 배트맨은 끝까지 “My Name is Batman”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진2 - 누가 관광객인지 누가 현지인인지 기가막히게 알아보는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배트맨.

그는 처음에 함께 사진을 찍는 조건으로 나에게 10달러를 요구했다. 며칠 후 그는 9달러로 깎아주겠다고 협상을 시도했다.]

 

 

 

 

#월스트리트의 트럼프 


그럼 미국 대통령 트럼프 분장을 한 ‘미스터 트럼프’는 얼마를 받을까. 월스트리트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처럼 분장한 그는, 심드렁하게 월스트리트 골목길에 주저앉아 있는데 사진 한 장에 단돈 1달러를 요구한다. 그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면 2달러로 가격이 뛴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 뉴욕의 월스트리트, 그 거리에서 모두가 꿈꾸는 롤모델인 백만장자 트럼프. 그는 배트맨보다 몸값이 많이 낮았다. 인기에 따른 시세인가. 횟집 메뉴판에 쓰여 있는 ‘時價’와 같은 의미일까. 타임스퀘어와 월스트리트의 땅값과 관광객 수의 차이일까. 아직 해답을 찾진 못했다. 그리고 어쩌면 트럼프의 지지도가 높은 웨스트버지니아 같은 지역에선, ‘미스터 트럼프’의 몸값이 배트맨보다 더 높을 지도 모른다. 

 

 

 


[사진3 - 배트맨이 10달러를 받는다면 트럼프는 얼마를 받을까. 월스트리트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는 <MEXICO WALL FUND> 라는 문구와 함께 월스트리트 쓰레기통 근처에 앉아있다.] 

 

 


[사진4 - 자세히 살펴보면 가격은 두종류다. 트럼프만 카메라로 찍으면 1달러. 트럼프와 함께 찍으면 2달러로 가격이 달라진다.]

 

 


[사진5 - 배트맨과 대통령 트럼프의 몸값차이는 꽤 컸다.]

  

 

 

인기에 따른 시세인가. 횟집 메뉴판에 쓰여 있는 ‘時價’와 같은 의미일까. 어쨌든 타임스스퀘어의 배트맨은 10달러, 월스트리트의 트럼프는 1달러다.

타임스퀘어와 월스트리트의 땅값과 관광객 수의 차이일까. 아직 해답을 찾진 못했다. 트럼프의 지지도율이 높은 웨스트버지니아 같은 지역에선, ‘미스터 트럼프’의 몸값이 배트맨보다 더 높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뉴욕에서는 배트맨의 몸값이 더 셌다.

 

 


#두 얼굴의 뉴욕, 19세기와 21세기 사이


뉴요커들은 땅 위에선 호떡집에 불난 듯 바쁘게 걷지만, 땅 밑에선 어린아이처럼 얌전해진다. 지하철 안에서 휴대폰이 터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책이나 신문, 잡지를 읽는다. 처음엔 속이 터졌다. 한국에선 지하철만 타면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카톡을 했는데, 여기서는 폰을 든 손이 민망해졌다. 여기는 뉴욕인데, 지하철에서 휴대폰이 안 터진다니 말이 되는가? 한국 유행어로 말한다면 “휴대폰 안 터지는 뉴욕 지하철, 실화냐?”


만약 한국이었다면 사람들이 참았을까. 그런데 뉴요커들은 전화가 안 터지는 지하철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왜 그런지에 대해선 여러 가지 분석이 있다. 미국 통신사들은 굳이 오래되고 더러운 뉴욕의 땅 밑에 통신망을 설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그 중 하나다. 미국은 땅이 넓고 인구가 많기 때문에, 통신사들이 굳이 경쟁하며 땅 밑에서 힘들게 통신망을 깔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지하철 승강장에선 와이파이가 연결되기 때문에, 뉴요커들은 정 급하면 다음 역에서 내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굳이 그렇게 까지 하진 않는 뉴욕


뉴요커들의 공통점은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다. 세계에서 제일 바쁜 이 도시가 과연 기술력이 부족해서, 통신망을 지하에 개통할 줄 몰라서 이대로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뉴욕과 뉴요커들은 꼭 필요한 것만 한다. 현관 열쇠도 마찬가지다. 뉴욕 맨해튼 아파트 현관이라면 홍채인식 같은 첨단 잠금장치가 있을 만하다. 그런데 여기는 오직 열쇠로 열고 닫는다. 한국 아파트에선 번호 키를 누르면 끝났는데, 열쇠를 가지고 다니면서 열고 닫는다니 좀 구식이 아닌가.

 

아파트에 입주한 첫날, 무의식적으로 문을 쾅 닫았다가 20분 만에 100달러를 날렸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던 길이었다. 문을 닫으면 저절로 잠긴다는 사실을 잊었다. 열쇠는 집안에 있다. 현관 앞에서 혼자 “어쩌지, 어쩌지” 중얼대다가 도어맨에게 내려갔다. 그랬더니 도어맨이 “너 앞으로 열 번은 이럴걸” 이라며 문을 열어주는 대가로 50달러를 청구했다. 항의하는 내게 도어맨이 말했다. “지금은 저녁 7시가 넘어서 50달러야. 7시 전에 오면 25달러야. 참고해”
순식간에 50달러를 날리고 나니 황망했다. 그리고나선 커피를 사러 나갔다. 그리고 5초후 또 깨달았다. 열쇠를 또 두고 나왔다. 이렇게 해서 난 20분만에 100달러를 뉴욕에서 날리고(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도 아니거늘...) 그날 밤 이불속에서 엄청나게 나 자신을 욕했다. 그 후론 열쇠를 목걸이로 만들어서 목에 걸고 다닌다.

 

뉴욕에서 사업하는 한국인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다. “현관 도어락 사업 하면 잘될 것 같지 않아? 뉴욕은 너무 구식이야” 내 제안에 친구는 비웃었다. “뉴욕 사람들은 그냥 열쇠가 편하고 안전하다고 느껴. 비밀번호로 열고 닫는 방식이 신기술이고 편하겠지. 하지만 가정집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하진 않아. 여기 사람들은 꼭 필요한 것만 한다니까. 그 사업하다가 곧 망할 걸”

 

 

 

#컬럼비아 저널리즘 스쿨의 가르침


나의 연수과정은 컬림비아 대학 Weatherhead East Asia Institute(WEAI)에서 진행됐다. 동아시아 관련기관이라 아시아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시아 관련 강의보다는 저널리즘 수업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포토저널리즘 수업 시간에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 신문 보도사진은 초상권침해와 관련된 골치 아픈 문제에 종종 시달립니다. 아름다운 벚꽃 나무 밑에 남녀가 지나가는 풍경, 부동산 모델하우스를 구경하거나 백화점 세일에 몰린 사람들의 모습 등등...이런 사진들을 신문에 보도하면, ‘내 얼굴을 허락 받지 않고 사진을 찍었으니 지워 달라, 얼굴이 나와 곤란하다, 보상해 달라’ 등등의 항의를 받고 때론 언론중재 절차를 밟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해결해야할까요” 교수는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한 개인이 모델하우스나 백화점, 시위현장 등 공개적인 자리에 나왔다는 것은 언론이 보도해도 상관없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사진 찍히거나 보도되길 원하지 않는다면 공개적인 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된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진을 찍은 언론의 책임은 없다고 본다.” 이 완벽한 답변을 통해 나는 단편적이지만 미국 언론의 자유를 느꼈다. 물론 이 같은 답변은 현재 한국의 언론 환경에서는 계속 논쟁거리가 되겠지만 말이다.

 

 

 


[사진6 - 컬럼비아 저널리즘 스쿨에서 비쥬얼스토리텔링 수업을 들었다.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이루어졌다.

니나 버만 교수는 사진기자 출신이다. 미국에서도 현장에서 뛰는 여자사진기자는 많지 않다.]

 

 


[사진7 - 니나 버만 교수가 직접 조명을 들고 조명사용법에 대해 강의하는 모습. 교수는 한국의 보도사진과 초상권에 대해서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한 개인이 모델하우스나 백화점, 시위현장 등 공개적인 자리에 나왔다는 것은 언론이 보도해도 상관없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사진 찍히거나 보도되길 원하지 않는다면 공개적인 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모델하우스나 시위현장의 사람 사진을 모자이크 하느냐 마느냐 가지고 토론해야 하는 한국언론의 현실이 생각났다.]

 

 

 

#뉴욕과의 이별

 

50편이 넘는 뮤지컬과 오페라를 싸게 봤고, 미술관도 공짜로 갔다. 뉴욕의 대학생들은 예술을 마음껏 즐길 특권이 있다. 학생증을 제시하면 대부분 할인 혜택을 받는다. 새벽녘 센트럴파크도 좋았고 해질녘 철도길을 개조한 하이라인 산책도 좋았다. 뉴욕에서 갑자기 한국의 대통령선거 투표를 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서울에 온지 석달이 다되어간다. 내 인생에 찬란했던 순간을 묻는다면 주저없이 뉴욕연수라고 말할 것이다. 소중한 기회를 준 성주재단과 여기자협회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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