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회 생갈렌 심포지엄 Leaders of Tomorrow 참가자 후기 - 연세대학교 국제학 권유경

 

 생갈렌 심포지엄은 40년이나 된 유서 깊은 행사이지만, 아직 대다수의 한국 대중에게는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나조차도 생갈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어떤 행사가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68혁명의 폭력과 혼란 속에 몇 명의 생갈렌 대학생들이 논리와 지성으로 기성 세대와의 대화를 시도한 것에서 기원하는 심포지엄에 대해, 나의 경험을 기반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2주가 지난 지금에도 내가 무엇을 경험하고 왔는지 100% 소화가 되지 않았을 정도로 독특하고도 밀도 높은 행사였다.
 

 

 

Why

 개인적인 지원 동기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영감을 얻고자 했고, 다른 하나는 이 방향으로 나아갈 때 필요한 추진력을 얻고자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제기구, 교육 비영리 단체, 컨설팅 리서치 업체 등 다양한 진로를 고려하며 방황하던 시기였다. 익히 주변에 알려진 컨설팅, 법, 대기업 등의 “성공 공식”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자극을 받고 싶었다. 한국적인 맥락을 벗어나, 국제학 전공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배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을 만나며 삶의 길을 보고 배우고 싶었다.

 다른 하나는, 속도감을 느끼고 싶었다. 청년 실업, 스펙 전쟁 등 암울한 뉴스 헤드라인 속의 “청년상”에 극도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Leaders of Tomorrow”, 즉 내일의 주인공이자 변화의 주체로 호명된, 그리고 감히 스스로를 그렇게 상상하는 당돌한 또래들을 만나고 싶었다. 이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다보면 삼투압처럼 내게도 그러한 삶의 태도가 묻어나지 않을까 내심 기대되었다.

 그렇게 내게는 주위의 환기와 clean slate가 필요했고, 마침 적기에 초대 이메일을 받아 기대와 떨리는 마음으로 스위스행 비행기를 탔다.

 

 

 

 

Where

 생갈렌이라는,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스위스 소도시에서 매해 5월에 개최된다. 꽤나 전형적인 스위스 마을 (이태리, 불어권보다 독일어권이 더 “스위스” 스럽다고 하는데, 그중에도 생갈렌은 서쪽 끝의 “극강의” 스위스 스러움을 자랑한다)이라고 한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도보 10~15분 내외에 도심, 관광지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심포지엄 기간에는 무료로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했다. 개신교도가 주인 스위스에서 생갈렌은 몇 안 되는 카톨릭 칸톤(주)로, 화려한 대성당과 옆에 있는 도서관이 참 아름다웠다.

 행사 메인 베뉴는 생갈렌 대학교이고, 심포지엄 기간 동안에 조명과 가설 텐트로 화려하게 모습을 변한다. 숙소는 독특하게도 재학생 자원봉사자인 호스트네 집으로 배정된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숙소가 아닌 형태에 놀랐지만 돌이켜보니 다신 없을 독특한 현지 경험을 한 것 같다.

 

 

 

 

Who

 이 행사의 가장 큰 특이점은 참가자 구성일 것이다. 일단 수치적으로는, 성장 잠재력과 학술적 아이디어로 뽑힌 내일의 리더 (Leaders of Tomorrow, LoT) 200명, 각국 기업과 기관들에서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오늘의 리더 (Leaders of Today) 600명, 외에도 20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언론이 있다. 내일의 리더 중 100명은 “Knowledge Pool” 이라는 “재원 추천” 시스템으로 뽑히는데, 패럴림픽 메달리스트, 에너지 스타트업 창업자, 최연소 부시장 등 정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성주재단에서 추천을 통해 초대되는 인원도 이에 해당한다. 나머지 100명은 “Global Essay Competiton”을 통해 당해 주제에 대한 짧은 학술적 에세이를 제출하여 뽑힌다. 올해는 800명가량이 지원했다고 하고, 각국의 학석사생들이 공공 도서관, 연금 개혁, AI 기술 윤리 등에 대해 리서치했다고 한다. 이렇게 거의 천 명이 넘는, 세계 각지에서 흥미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인구 7.5만의 소도시에 모이는 것이다.

 

 

 규모 외에 다양성 면에도 단연 심포지엄에 견줄 수 있는 행사는 많이 없을 것이다. 세대 간 대표성은 물론이고, 성별이나 지역, 학교 등을 고려하여 참가자들을 구성한다. 일례로 국가/지역을 들자면, 주최 장소를 고려하였을 때 서유럽 출신 참가자가 주류이긴 하나, Kenya, Nicaragua, Moroco 등 평소 국제 컨퍼런스에서 잘 대표되지 않는 국가/지역의 참가자들도 다수 초대되었다. 또한 참가자와 연사 성비에서도 여성 참가자들의 비율이 거의 대등했을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참가한 LoT도 있었는데, 다들 배려하고 포용하는 분위기라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자주 보이는 중년의 “Manel” (남성으로만 구성된 연사자)이 생각났다.

 

 

 

 

What

 공식 일정은 크게 이틀간, 옆 동네 (다보스)의 컨퍼런스와 유사하게 구성 되어 있다. 하지만 LoT에게는 하루의 관광일과 네트워킹 데이가 주어진다. 그리고 비공식적인 일정은, 생갈렌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망 있고 사교적인 사람들 200명이 모이면, 각종 핑계를 대고 작고 큰 모임을 구성하게 된다. 나도 꽤나 외향적이고 일 벌이기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심포지엄은 정말이지 비견할 수 없는 네트워킹 마라톤과 같았다. 관광일 전야부터 시작된 술자리에서, 다음날 버스, 관광지, 워크샵, 디너, 2차… 이튿날부터 목이 쉴 정도로 끊임 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주제는 민족 국가의 미래, 연금 개혁, 90년대 미드, 스위스 음식 등 종잡을 수 없이 넓고 다양했고, 대화 상대들도 어느 하나 겹치는 사람 없이 다채로웠다. 내가 언제 또 탄자니아 인권변호사 / 오스트리아 철학도 / 노르웨이 소셜 창업자를 만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대학교 신입생처럼, 아드레날린과 FOMO (소외 증후군)을 잔뜩 느끼며 그렇게 공식 행사를 맞이했다.

 

 

 공식 일정은 전체 세션, 소규모 세션 그리고 비공식 세션으로 나뉜다. 공식 세션에는 Khan Academy의 창립자, Black Lives Matter의 주최자, 대처 총리 내각에 있었던 영국 정치인 등 유명인사의 스피치/패널 토크가 있었다. 소규모 세션은 동시에 4~5개 정도로 나뉘어 각자 관심이 있는 주제에 신청해서 들을 수 있는 형식이었는데, 워크샵이나 토론 행사처럼 관객 참여 주도로 이루어진 세션들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공식 세션은 오찬, 오후 커피 타임, 만찬, 2차 파티 등 형식적인 주제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다른 참가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리고 대다수의 LoT가 동의한 바로는 세션이 비공식적이고 소규모일수록 만족도가 높았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Decarbonization, technology, aging society 테마가 많았고 외에도 social movements, urbanization, pension reform 등 흥미로운 주제였다. 하지만 다양한 배경의 불특정 다수 대상의 연사라는 점에서 다소 피상적이거나 일반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는 데 반해 소규모 세션에서는 비교적 솔직하고 구체적인 의제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논의할 수 있어 더 유익했다. 또한 세션 밖에서도 다양한 리더들을 만나며 (인상적이었던 만남만 꼽자면, 싱가포르 투자사 고문, 스위스 건축 대표, 인도 IT 기업 마케팅, 독일 B corporation 대표 등이 있다) 보다 내밀하게 업계의 리더들이 갖고 있는 고민과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How

 차기 심포지엄 참가자들을 위해 도움이 될까, 심포지엄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은 “심포지엄을 망치는 다섯 가지 방법”을 공유한다.

  1. 바보 같은 질문하기 - 실제로 궁금한 것을 질의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지식을 뽐내기 위해 하는 비-질문하지 말 것!
  2. 진솔한 대화 대신 계산적으로 타겟을 좇기 - 더 반짝거리고 대단한 사람들을 찾는 경기가 아니라, 매 인연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할 것
  3. 너무 빨리 번아웃 경험하기 - 정신적, 체력적 페이스 조절을 잘못해서 너무 빨리 에너지를 소진하지 말 것
  4. 불안감을 냉소와 비관으로 가리기 - 대단한 이력과 배경을 자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의기소침해질 때, 방어적으로 비꼬며 상황을 면피하지 말 것
  5. 내년의 심포지엄에 한눈팔기 - 올해 주어진 상황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내년에 어떻게 하면 또 초대될까 고심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

 

 

 

 

Epilogue.

 일상으로 복귀하고도 3주가 지난 지금, 생갈렌에서의 나날들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심포지엄의 매력은 그런 것 같다 - 매일 매일 반복적으로 버티며 쳇바퀴같이 굴러가는 일상 속에 잠깐 멈춤 버튼을 누르고, 한 발자국 물러나 더 먼 미래, 넓은 세상, 깊은 본질 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더 넓은 시야와 유연한 사고를 갖는 것.

그리고 이러한 각성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이때 만난 운영진, 오늘의 리더, 그리고 무엇보다 LoT를 경유해서 내 세계는 조금 더 넓고 말랑말랑해졌다고 단언할 수 있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는 좋은 계기를 가능케 해주신 성주재단과 주최 ISC에게 이 기회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