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Gallen Symposium 후기 _ 박상원
지난 5월, 스위스 생갈렌대학에서 매년 개최되는 St. Gallen Symposium에 Leaders of Tomorrow(LoT)로 참가하였다. 아직 학부생인 내가 초청 받을 가능성이 정말 낮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치 않은 기회인 것 같아 조심스레 지원했었다. 이후 재단의 연락을 받았을 때의 기쁨과 당황스러움 사이의 그 묘한 감정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내일의 지도자라는 타이틀이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졌으나, 심포지엄에 참석해서 만나게 될 수많은 인연들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머리속에 그리며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담았다.
1일차 - Touristic Day
세계 각지에서 모인 200명의 LoT들은 2023년 5월 2일 St. Gallen 기차역 뒤편의 관광버스 안에서 서로를 처음 만났다. 서로가 초면이기도 하거니와, 적지 않은 수의 LoT들이 심포지엄 참가를 위해 장거리 여행을 하느라 피곤한 상태였을 것 같았는데, Säntis 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은 시끌벅적 했다.
버스 안에서 나는 오스트리아를 기반으로 한 벤처캐피털의 대표인 LoT의 옆에 앉게 되었다. 안 그래도 마침 나는 암스테르담의 VC에서 펠로우로 활동하고 있었던지라 유럽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여러 대화를 나누던 중 공교롭게도 우리 둘 다 같이 아는 지인이 있어서 그 지인에게 영상통화를 같이 거는 장난도 치면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이후 하루 종일 진행된 투어 일정 속에서 영국, 프랑스, 나이지리아, 미국 등에서 온 여러 LoT들과 서로의 배경과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교류할 수 있었다.
이날 알게 된 놀라운 사실 하나는 스위스의 모든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것이 1990년, 즉 비교적 최근이었다는 사실. 투어 일정 중 St. Gallen 옆에 위치한 스위스의 주인 Appenzell Innerrhoden에 가게 되었는데, 해당 지역 출신 가이드가 말하기를 해당 주에서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된건 1990년, 그것도 자체적으로 부여한 것이 아닌, 지켜보다 못한 스위스 연방이 강제하여 부여되었다는 사실을 말하자 경악하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사진) – Appenzell Innerhoden의 주민들은 아직도 주민투표 시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손을 드는 방식으로 투표를 한다고 한다.
2일차 – Leaders of Tomorrow Day
본격적인 심포지엄 시작에 앞서 LoT들만의 작은 심포지엄이 열렸다. 200명의 LoT들과 몇몇 후원기업만 참석한 자리에서 LoT들은 이번 심포지엄의 Global Essay Competition*의 Top Essays로 선정된 에세이를 함께 읽고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홍콩 출신의 LoT가 제출한 공적개발원조에 중요성에 관한 에세이를 읽고 리뷰하게 되었다. 흥미로웠던 LoT들마다 서로 국제개발협력에 대해 가지는 생각의 차이가 꽤나 있었다는 점이었고, 특히 인도 출신의 LoT와 이 자리에서 했던 대화 겸 토론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지원을 제공하는 국가가 해당 자금의 집행과정 및 사용처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었고, 그 LoT는 지원을 받는 국가와 그 지역의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의 안착을 주장했었다.
(사진) ㅡ 2일차 LoT Day 케이스 발표 세션 모습
에세이 리뷰 후에는 LoT 후원 기업들이 현재 직면하는 도전과제를 LoT들에게 소개하고, 이에 대한 LoT들의 비전을 듣는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나는 스위스 바젤에 본사를 둔 한 농업 기술 관련 기업의 케이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지속적으로 증가해 나가는 식량수요에 대해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면서 대응할 방안을 다른 LoT들과 함께 논의해 제출했다. 아쉽게도 이후 발표 세션에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많은 기업들이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 지속가능성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는데 짧게 나마 함께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3, 4일차 – The 52nd St. Gallen Symposium
비슷한 또래의 LoT들끼리의 시간은 이제 끝이 나고 본격적인 심포지엄이 시작되었다. 심포지엄은 수강신청과 유사하게 주최측의 모바일 앱에서 듣고자 하는 세션들을 찾아 신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다양한 주제의 세션들이 있었고, 모든 주제들이 흥미롭게 들려 몸이 하나밖에 없는게 진심으로 아쉬웠다. 나는 나의 관심분야인 지속가능성장과 그 안에서의 기업의 역할, 우리가 현재 마주한 지정학적 위기 등에 관한 세션에 참석해 패널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소규모 강당에서 진행된 세션들도 있었는데, 이러한 세션에는 LoT들도 단순히 패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고 패널들의 역질문을 받는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역동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본 심포지엄에서는 각 분야의 시니어 한명과 소규모의 LoT들이 함께 대화하는 LoT-Talks라는 세션이 있었는데, 나는 전임 국제적십자 총재와 함께한 LoT-Talks에 참가할 수 있었다. 전직 스위스 외교관이기도 했던 그와 국제적인 분쟁에서 중립국인 스위스의 역할, 그리고 적십자의 역할에 대해 다른 LoT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고, 특히 한국인으로서 남북관계에서 국제적십자가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서도 얘기해 볼 수 있었다.
(사진) ㅡ 피터 마우어 前 국제적십자위원회 총재와 함께
총평
먼저 이런 특별한 기회를 내게 선물해준 성주재단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흘간의 바쁜 일정 속에서 살면서 내가 이런 사람을 만날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나 몇 안되는 학부생이었던 나에게는 더더욱 특별한 경험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전세계 어디든지 하루이틀이면 갈 수 있는 시대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좁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심포지엄 참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확실히 더 넓어졌다. 심포지엄을 통해 각 분야의 성공한 시니어들을 만나 여러 대화를 나누는 것도 유익했지만, 비슷한 또래의 LoT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생각을 곱씹어보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 뭔가 나에게는 더 유익하고 소중했던 것 같다. 심포지엄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호스트가 LoT들에게 건넨 말이 있다. “아직도 본인이 왜 여기에 초청되었는지 모르겠는 LoT들에게, 이 자리에 초대된 모든 LoT들은 이곳에 초대받을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이 곳에서의 시간을 즐겨라”. 내가 만난 모든 LoT들은 충분히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LoT들도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번 심포지엄의 주제는 Intergenerational Contract(세대간의 합의)였다. 과연 우리는 2일간의 심포지엄을 통해 세대간의 합의를 이루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몇가지 확실하게 느낀게 있다면 모든 세대가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하고는 있다는 점,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에 대해 생각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렇다고 접점이 없는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세대간의 대화가 이벤트성으로 특정 참가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여 짧게 열리는게 아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대화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무슨 노력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게 된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St. Gallen Symposium의 주최측인 International Students’ Committee에 소속되어 있는 학생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차후 심포지엄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만약 시간을 되돌려 다시 참가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할지 적어 두자면:
- 규모가 큰 강당에서 진행되는 세션들은 심포지엄이 끝나면 전부 유튜브**에 올라오더라. 그러니 다시 갈 수 있다면 유튜브에 올라오지 않는 소규모 세션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 같다. 소규모 세션이니 만큼 패널 세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은 덤.
- LoT들은 현지 대학생들이 제공하는 홈스테이에 머물게 되는데, 심포지엄 일정이 매우 바쁜지라 홈스테이 호스트들과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다. 가능하다면 참가 전 호스트들과 함께 할 시간을 미리 계획해 두는게 좋을 것 같다. 참고로 내가 만난 홈스테이는 내년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올 예정으로, 아직도 연락을 계속 하면서 지내고 있다.
여담
1. 매년 심포지엄에는 LoT 호스트가 있다. 이번 심포지엄의 호스트는 한국계 캐나다인이었는데, 심포지엄 마지막 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 고등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의 조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 참 좁다.
2.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기는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사흘정도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물론 머리속에서는 심포지엄에서의 시간들을 하나씩 곱씹어보고 있었다.
*Global Essay Competition: 매년 200명씩 초청되는 LoT들 중 절반은 심포지엄 주최측인 ISC가 주관하는 에세이 대회를 통해 선발된다.
**심포지엄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StGallenSymposiumLive